메두사 되기 대개의 신화 기술과는 달리 ‘고르고’는 추악하고 무서운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메두사는 고르고 세 자매 중 막내의 이름이다. 고르고들은 여신들과 마찬가지로 불멸하고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러나 유독 메두사만은 죽을 운명이었다. 불멸의 종족에서 왜 하필 메두사만이 죽을 운명이었을까? 왜 신화 기술자들은 메두사를 죽이고자 했을까? ‘메두사’라는 어원을 찾아보면 ‘여성 지배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오랫동안 글쓰기는(신화를 기술하는…
지난 30일 해단식 이후 일주일을 더 지켜온 천막을 걷었다. 1년 하고 며칠, 천막 아래 썩고 묶은 것들만큼 모두가 착잡했고, 물로 씻어내고 흘려보낸다. 그들도 우리도 흘러갈 것이다. 시궁창이어도 고이지 않을 것이다. 할 말이 많다 명성 앞 호프 모두가 취하고 있다. 12월 7일
헌책방에서 만나는 ‘우연’이 차츰 쌓이면, 언제고 찾던 책이 눈앞에 있을 때의 떨림과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책이 주는 설렘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흥분된다’로 끝내기엔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오랜 시간 퇴적된 책 냄새, 그 빛바랜 종이에 눌린 시간이 한꺼번에 나를 들이친다. 그러면 몸이 훈훈해지는 게 어째 찬찬히 책을 살필 기운이 난다. 어느…
밖에 나갈 채비를 하는데 휴대폰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 뒀더라 끙끙거리며 뒤적이다 집 전화로 전화를 걸어본다. 웬 음악이 나오기에 잘못 걸었나 싶어서 끊었다. 다시 번호를 확인해 가면서 전화를 건다. 웬 음악은 여전히 나온다. 생각해보니 지난달엔가 컬러링을 이용하면 싸이월드 도토리를 준다기에 신청했던 서비스다. 한 달은 공짜 라더라. 하이든의 ‘세레나데’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대개 “글쎄요, 잘 모르겠는데요…….”하겠지만 직접 듣는다면…
덥고덥고덥고 거기에 몇 가지 일이 짜증을 보탠다. ‘씨발‘하고 외치고 싶다. 한 달쯤 됐나? 책장 옆에 쌀가마니를 두었다. 쌀에서 난 고자리가 책장과 책 틈마다 난리도 아닌 게다. 모든 책을 일일이 커버를 벗겨서 닦고 책장의 벽돌을 한 장 한 장 들어내고 벽돌을 닦고 벽을 닦고 어디든 미세한 틈만 있으면 어김없이 자리를 튼 고자리를 쓸어냈다. 쓸어내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이런 꿈을 꾸었다. 풀숲이 우거진 어둑한 산길에서 청솔모가 말을 건다. "여기는 사람의 발자국을 잊은 곳이에요. 이곳에 흔적을 남기면 산을 헤매던 영혼들이 당신의 발자국을 따라 걸을 테죠. 거기에서 그 영혼들이 까마득하게 잊고 있던 세계를 기억해 낼 거예요. 그리고 당신의 등 뒤에서 그 세계를 향해 팔매질하겠죠. 당신은 이쯤에서 돌아가는 게 좋아요. 거꾸로 가야 하는데 밟았던 길을 되짚어…
설프게 비가 내린다. 그치는가 싶더니 다시 부슬거린다. 숨책에 자전거를 묶어둔 것을 집으로 가져와야지 싶었다. 아스팔트를 달리는 것은 허벅지에 어떤 무리도 없다. 외려 바퀴에 딸려 발은 내 의지를 벗어나고, 바람도 크게 거슬리지 않는다. 게다가 비까지 한몫하니, 속도는 거칠 게 없다. ‘비가 계속 오면 어쩌나’라고 생각 하는 순간 바퀴가 아스팔트를 엇나갔다. 왼쪽 무릎과 양손바닥이 듬성듬성 패였다.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