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무엇이던지 저만큼 가치 있는 것이 있던가. 대가리 꼿꼿이 세우고 생각컨데 나는 너다. 이 삽화를 보는 내내 엉뚱하게도 모르스 앙리(Maurice Henry)의 데생이 오버랩 된다. 나는 자학의 시간이 길다. 개구리야 주먹을 더 굳세게 쥐렴, 황새야 세상은 늘 노랬잖니. 나는 힘껏 옭매던 밧줄을 놓을 테니 내 두 발은 시궁창이어도 좋아라. <Never ever Give up>의 출처가 궁금해서…
김훈은 무엇보다 풍경과 상처의 작가이다. 그의 마침표 끝에서는 어떤 풍경들이고 고스란히 살아난다. 무턱대고 보여 지는 것이 아니라, 내 과거의 편린들이 그의 결을 따라 한뜸 한뜸 기워 엮인다. 뒤돌아 보건대 덮었던 상처는 아물지 않았고 풍경은 온전치 않다. 말들이, 단어가 움직이고 나는 내 기억으로 비틀거리며 선다. 면도날에 손을 베인 것처럼 금방 선명하게 핏빛이 그어진다. 그러나 기억들은 흘러넘치는…
The Carrier Bag Theory of Fiction 픽션의 운반 가방 이론 어슐러 K. 르 귄(Ursula K. Le Guin), 1986 (옮긴이 부깽) 초기 인류가 인간으로 진화한 것으로 보이는 온대와 열대 지역에서는, 그 종(種)의 주된 식량이 식물이었을 것이다. 구석기, 신석기, 그리고 선사 시대에 이 지역에서 인간이 먹은 것의 65~80%는 채집을 통해 얻은 것이었다. 오직 극지방의 북극권에서만 고기가…
사랑은 단순한 신체적 메커니즘이 아니다. 특히 대상을 열렬히 사모하는 경우에,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존재에 대해 질문하게 하고. 우리 자신을 전적으로 헌신하게 한다. 또 사랑은 우리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증거하는 힘이기도 하다. – 메를로 퐁티 돌스 (Dolls) / 기타노 다케시 – 타자와 만나기, 사랑하기 영화는 메이도노 히캬쿠라는 분라쿠로 시작되고 있다. 이 분라쿠를 공연장에서 관객들이…
김영하의 등단 작품은 누가 뭐래도 95년에 발표한 거울에 대한 명상이다. 어설픈 시뮬라크르와 나르시시즘 그리고 반전을 적절하게 섞여 나온 퓨전 소설. (제목도 그런가? 김이소의 ‘거울 보는 여자’와 ‘칼에 대한 명상’을 싹둑 잘라서 붙여 논 듯한, 김이소 소설이 나중에 나왔을까? 웃자고 한 말이니 패스 ^^) 김영하의 작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 남진우를 대상으로 한 거 아니냐는…
헌책방 동호회에 올린 글입니다. ——— 무균무때(주방용) – 책 표지를 닦는 게 가장 탁월한 세제 중 하나이며 냄새가 역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세제뿐만 아니라 무엇으로 닦느냐 역시 중요합니다. 동네 ‘무조건 천원 코너’에 가시면 안경 닦는 천 비스름한 거 살 수 있습니다. 안경 닦는 천보다 두껍고 크죠. 이 두 가지가 준비되면 대부분 책을 새책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물파스…
며칠 비가 추적거리는 게 몸이 한없이 늘어진다. 이런 날이면 한적한 곳을 싸돌아 댕겨야, 겨우 책상머리에 앉아 할 일들을 주섬주섬 챙길 수 있다. 이따가 걷자며 곱살 진 마음을 달래는데 금세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는다. 한적한 길로만 여기던 곳도 네온사인이 하나 둘씩 켜지면서 번화가 못지않게 오가는 이들이 많아진다. 골목 끝을 돌자마자 헌책방이라는 녹색 간판이 섰다. 퍽 오래 전에는…
헌책방에서 만난 출판사의 수를 헤아릴 수 있을까. 아직 동네서점 한 귀퉁이나 인터넷, 대형서점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출판사부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재미난 출판사까지. 책을 읽는 이들 나름대로 자신에게 특별한 출판사가 있을 텐데, 책의 내용을 떠나서 출판사가 책 구석에 슬쩍 적어놓은 글만으로도 정이 가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걸 찾아 읽는 맛도 쏠쏠하다. [새와물고기]는 헌책방의 끝간데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