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한테 전화가 왔다.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인데, 필요한 책이 있으면 찾아보겠다고. 아 흑, 이 말을 덧붙였다. 술 못 마시는 사람 앞에 양주를 갖다놓은 꼴이라고. 아 아 아 보수동이 가직했다면 주성(酒聖)을 넘어서 열반주(涅槃酒)에 들어도 좋으련만. 오늘같이 끄느름한 날도 거침없이 신났을 텐데. 보수동 헌책방골목의 역사는 반세기를 훌쩍 넘었다. 지금의 국제시장 터였나, 광복 직후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 들을…
그런 날들이 있어요. 궁뎅이가 촐싹이며 마음까지 에부수수할 때 몸을 가볍게 하고 한적한 곳을 싸돌아 댕겨야, 겨우 책상머리에 앉아 할 일들을 주섬주섬 챙길 수 있죠. 간간이 학교에 갈 때나 일터에 가면서 헌책방을 지나치곤 했지만 ‘오늘은 헌책방에 가야지’라고 미리 다짐을 해두면서는 통 움직이지 않았거든요. 며칠 전부터 헌책방에 가야지하고 곱살지는데, “부깽 돈 없다며?” 라고 그루박아 말하더군요. 네 없어요.…
하늘은 흐리멍텅 춥기는 오질라게 춥고 오랜만에 교보를 향해 활보할까 종각지하도를 나서는데 바람이 휙 하고 으스스 속삭이더라. 따뜻한 지하도와 연결되는 영풍으로 가라고. 나는 왜 다른 사람들보다 추위를 더 탈까 아무리 고민해 봤자, 결론은 쿨맥스 액티브 내복밖에 떠오르는 게 없고, 그렇다고 여름에 더위를 안 타는 것도 아니고, 날씨는 사시사철 징글맞게 나와는 멀어져만 간다. 나이 탓을 해보고 싶지만…
요전에 헌책방 앞에서 잠시 앉았는데, 지나는 이가 헌책방은 한 번도 안 가봤다며 옆 사람에게 중고는 너무 더럽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선 들어가 보라고 권하고 싶었지만 팔자에 헌책방이 없는 걸 권한다고 될 일일까 싶어 말았다. 중요한 건 헌책방의 책들 대개는 더럽지 않다는 것이다. ‘더럽다’는 것은 손때 묻으며 자연스럽게 책이 낡은 것과는 차이가 있다. 곱게 나이를 먹은…
헌책방에서 만나는 ‘우연’이 차츰 쌓이면, 언제고 찾던 책이 눈앞에 있을 때의 떨림과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책이 주는 설렘으로 심장박동이 빨라지는 소리를 듣게 된다. ‘흥분된다’로 끝내기엔 결코 담아내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오랜 시간 퇴적된 책 냄새, 그 빛바랜 종이에 눌린 시간이 한꺼번에 나를 들이친다. 그러면 몸이 훈훈해지는 게 어째 찬찬히 책을 살필 기운이 난다. 어느…
김영하의 등단 작품은 누가 뭐래도 95년에 발표한 거울에 대한 명상이다. 어설픈 시뮬라크르와 나르시시즘 그리고 반전을 적절하게 섞여 나온 퓨전 소설. (제목도 그런가? 김이소의 ‘거울 보는 여자’와 ‘칼에 대한 명상’을 싹둑 잘라서 붙여 논 듯한, 김이소 소설이 나중에 나왔을까? 웃자고 한 말이니 패스 ^^) 김영하의 작품 중 하나를 꼽으라면 뭐가 있을까, 남진우를 대상으로 한 거 아니냐는…
헌책방 동호회에 올린 글입니다. ——— 무균무때(주방용) – 책 표지를 닦는 게 가장 탁월한 세제 중 하나이며 냄새가 역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세제뿐만 아니라 무엇으로 닦느냐 역시 중요합니다. 동네 ‘무조건 천원 코너’에 가시면 안경 닦는 천 비스름한 거 살 수 있습니다. 안경 닦는 천보다 두껍고 크죠. 이 두 가지가 준비되면 대부분 책을 새책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물파스…
며칠 비가 추적거리는 게 몸이 한없이 늘어진다. 이런 날이면 한적한 곳을 싸돌아 댕겨야, 겨우 책상머리에 앉아 할 일들을 주섬주섬 챙길 수 있다. 이따가 걷자며 곱살 진 마음을 달래는데 금세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려앉는다. 한적한 길로만 여기던 곳도 네온사인이 하나 둘씩 켜지면서 번화가 못지않게 오가는 이들이 많아진다. 골목 끝을 돌자마자 헌책방이라는 녹색 간판이 섰다. 퍽 오래 전에는…
헌책방에서 만난 출판사의 수를 헤아릴 수 있을까. 아직 동네서점 한 귀퉁이나 인터넷, 대형서점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는 출판사부터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재미난 출판사까지. 책을 읽는 이들 나름대로 자신에게 특별한 출판사가 있을 텐데, 책의 내용을 떠나서 출판사가 책 구석에 슬쩍 적어놓은 글만으로도 정이 가는 경우가 종종 있고 그걸 찾아 읽는 맛도 쏠쏠하다. [새와물고기]는 헌책방의 끝간데없는…